진보신당의 행동대장으로 진중권이 나섰다. 것도 두팔을 단단히 걷어부치고 말이다. 요즘들어 칼럼을 연재하는 일도 부쩍 잦아진데다 칼럼의 강도도 높아졌고 미디어나 강연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더 자주 얼굴을 비친다. 그게 다 허구헌 날 닭짓에 머릴싸매는 2MB정권 때문이기는 할테지만 그와 더불어 자신의 입을 통해 진보신당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진중권은 요즘 매일 저녁 10시부터 아프리카에서 방송을 한다. 방송은 실시간으로 생중계 될 뿐만 아니라 채팅과 전화연결을 통해 진중권과 시청자들을 즉각적으로 연결시켜 준다. 전화연결은 사전에 입을 맞춰보는 절차도 없고 발신번호 제한으로 걸려오는 전화도 환영이다. 말그대로 리얼로 밀고가는 방송이다. 주제는 진중권과 함께하는 진보토크였다. 근데 이게 좀 모양새가 우습다. 물론 초반에는 북핵이야기도 나오고 대운하, 등록금 투쟁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등장했고 진중권은 늘 그랬듯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여기서 끝났다면 뭐 특별할 것도 못된다.
그런데 사건의 발달은 어느순간부터인가 디씨갤러들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잠깐. 디씨와 진중권이 이전부터 이미 기묘한 애증의 관계로 얽혀있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특히 작년의 디워 사태? 당시 진중권의 아성에 야무지게 도전장을 던졌던 몇몇 갤러들이 그와의 맞짱토론 후 패잔병이 되어 돌아온 뼈아픈 경험을 겪어야 했다. 이후 디씨인들은 진중권에 대해 두려움과 존경이 공존하는 일종의 경외심을 품어오게 되었으며, 동시에 갤 곳곳에는 기필코 진중권을 한번 제대로 꺾고 영웅으로 추앙받아 보리라는 야심을 품은 이들이 칼을 갈아왔다.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해보자. (이건 내 기억이랑 갤을 대충 참고한 것이라 잘못된 사실이 있을수도 있다.)
3월 30일. 스타트를 끊은 건 정사(정치사회)갤에서 각종 떡밥질을 하던 '박정희각하'였다. 느닷없이 진보신당도 종북주의가 아니냐며 달려들었다가 결국 자신이 사실관계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물러난다. 난세의 전조였다.
3월 31일. 진중권을 족치고 싶다며 설치던 코갤의 '강태공'의 전화가 연결됐다. FTA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며 버텨보려했지만 결국 보기좋게 말리고 말았다. 뒤이어 코갤의 '연아빠돌이'가 연결되었다. 박정희 이야길 하다가 떡밥이 떨어지자 밑도끝도 없이 "태연아 사랑해"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소녀시대 오덕이었다. 그 이후 전날의 굴욕을 씻고자 '박정희각하'가 재도전을 신청했으나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수준의 논리를 들이댔다. 결국 궁지에 몰린 그는 진중권이 재반박을 하려하자 의연하게도 "더이상 발렸다는 말 듣기 싫습니다" 며 더이상의 통화를 거부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아, 이런것도 있었다. 진중권 씨, 라디오 스타를 보시나요? 안보는데요. 어..그래요? 진중권에게 디워란~?
이윽고 정사갤에서 식민지근대화설, 518폭동설, 히틀러좌파설을 설파하던 키보드워리어 '허탈'이 연결되었다. 갤러들은 보수우익의 대표 키워였던 그가 진중권과의 빅매치를 보여줄 것을 기대했지만 쟁점이 부족했던 대화는 20분이상 늘어졌고 방송으로 보여진 '허탈'의 실재는 놀랍도록 얌전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했던 한 익명의 갤러가 그들의 대화 중 문자를 보내 '허탈'이 평소 주장하던 떡밥들을 던지며 그에 대한 논평을 진중권에게 부탁했더니 진중권은 그게 '허탈'의 떡밥인줄도 모르고 "그런 무뇌아는 그냥 그렇게 살다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돌아가시면 된다"며 그가 듣는 앞에서 그를 보내버렸다. 이제 정사갤에서 '허탈'의 아이디는 찾아 볼 수 없게 될것만 같았다.
4월 1일. 방송의 수위가 막장으로 치달았다. 처음엔 코갤의 '시민케인'이 MB의 여론조작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점잖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그는 소녀시대를 창녀인 것 처럼 비유해버리는 의도가 애매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었다. 이 미끼는 던져지자마자 소시덕후들의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뒤이어 연결된 '연아빠돌이'가 방금전 소녀시대를 창녀에 비유한 것에 분노하며 소녀시대가 여론조작에 의해 성장한 거품그룹이 아님을 밝혀야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다시만난세계부터 시작해 소녀시대의 이력을 줄줄이 읊어댔고 방송을 깽판치기 싫었던 진중권은 그걸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걸려온 전화는 3일 연속 고정출연중이신 '박정희각하'였다. 그는 연결되자마자 숨도 안쉬고 온갖 육두문자를 써가며 소덕들을 까기 시작했다.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달은 진중권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그럼 안돼요. 방법이 틀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박정희각하'는 진중권의 훈계를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렇게 묻는다. "원더걸스 아세요?" 그 순간 빵터지는 전국의 찌질이들. 그 순간 누군가는 속이 바짝탔겠지만 우리같은 찌질이들에게 그것은 큰웃음과 빅재미의 향연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방송의 주제는 진중권과 함께하는 진보토크였다. 갤러들이 FTA나 등록금 문제 등 나름 떡밥거리들을 준비해와서 명목상으로는 나름대로 다양한 얘기들이 오간 것처럼 보였지만 이 방송이 진정한 진보토크였다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질문한 갤러들이 정말 그 주제에 대해 심도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고 믿는 이도 없다. 한켠에서는 진보신당 홍보해보겠다고 야심차게 나왔다가 디씨 찌질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진중권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고 혀를 찬다. 또 누군가는 태연이, 서현이를 누군가의 여자친구쯤으로 알고, 비누 주우라는 문자를 이해못하고 눈만 껌뻑이는 진중권의 모습을 보면서 맨날 잘난척 하더니 너도 한번당해봐라는 통쾌함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걸려오는 심각한 통화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방송은 진지한데라곤 없었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렸고 사회자는 낄낄거리며 웃음참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뜬금없이 이명박을 가지고 기가찬 삼행시를 읊었다. 진중권은 담배를 물었다.
하지만 방송이 이렇게 막장이었다고 해서 진중권은 하루 세네시간씩 헛 짓을 하고 있는걸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이번 방송은 진중권에게도 진보신당에게도 득이리라 생각한다. 김구라-황봉알의 시사대담의 프레임을 따와서 전화연결이라는 소스를 집어넣은 것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탁월한 선택이었다. 똘끼가 넘치는 디씨갤러들과 방송이 막장으로 치닫는 상황속에서 세련되게 받아치는 진중권의 조합은 방송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진중권은 정치인 몇 명 깔줄 아는 것이 정치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네티즌들에게 진짜 정치가 어떤 건지 민주주의가 평등을 의미한다는 것부터 이해시키려 했다. FTA나 세금문제 등록금문제 등 여러 사안에 걸친 진보의 입장을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지금껏 미디어에 비춰진 지식인들이 국민들의 수준을 자기들 멋대로 '과대평가'하고선 앞뒤맥락 배경지식 다 싹잘라버리고 대충 버무려 말하는 모습만 보다가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모습에 네티즌들의 호감은 급상승했다.
물론 거기에는 전화를 건 갤러들의 역할도 컸다. 그래서 센스있는 진중권은 그들의 용기를 칭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찌질함에 낄낄대고 나도 그들을 찌질하게 묘사했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그 순간 전화를 걸어볼까, 말까 고민했던 내가 그들보다 세 배 더 찌질했다. 진중권의 말빨엔 발렸지만 기에 눌리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으로 얻었던 대답에서 다른 청취자들은 진보진영의 입장에 대해 더 명확하게 알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방송은 막장이라면 막장이었지만 역동성이 넘쳤다. 공중파가 아니었기에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컸을 것이고 '돈이 없는' 진보신당은 아마도 이런 강점들을 활용해서 다소 언더그라운드적인 방송시스템을 통해 정치운동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 같다.
진중권은 속이 답답해질려 하면 캔맥주에 손을 뻗고 담배를 입에 물지만 시종일관 차분하고 친절한 톤을 유지했다. 만약 여느 토론에서 욕심많은 기득권을 상대할때처럼 갤러들을 몰아붙였다면 그 동영상은 잠깐의 이슈가 되어 돌아다니겠지만 결국 진보신당에는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진중권은 그동안 그의 말빨과 독설만을 경외하던 네티즌들에게 어떤 다른 의견이라도 받아들일 줄 알고 상대가 약자라고 해서 얕봐선 안된다는 것이라는 걸 보여줬다. 그리고 네티즌들이 그의 이미지를 어렴풋이 나마 진보신당의 그것으로 끌고 갈 여지를 넓혀놓았다. 진중권과 디씨의 소통은 곧 지식인과 대중의 소통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대화가 일방적이고 계몽적인 형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듯한 -를 띠고 있었다는 것을 소통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말이 트였다는 것 자체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찾았다는 희망을 발견한 듯했다. 결론은 유쾌한 방송이었다.